The Films

화양연화 (花樣年華: In The Mood For Love)

섭소천 2005. 12. 20. 11:28

 

"그와의 만남에 그녀는 수줍어 고개를 숙였고...그의 소심함에 그녀는 떠나가 버렸다"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런 내용의 글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화양연화(花樣年華)는 붉은 색 바탕위에 쓰여진 이 글로 시작된다.
왕가위의 지금까지의 작품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이다.
나는 이 영화를 혼자 극장에 가서 보았다.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서 난 좀 더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는 아팠다.
이 영화는 사랑이란 것이 그저 아프기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 영화는 아프다.
참 아픈 영화다.

 

 

쉼없는 시간속에
그녀는 그녀의 머리를 숙이고

그에게 다가설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질 못했다.

용기가 없어서...
그녀는 돌아서서 멀리 떠나갔다.

 

 

사랑하면서....너무나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못내...

그 사랑에 대한 향기를 잊지못하면서.....

그들은 떠나간다....
아련하게 떠오르는 영상, 빨간색, 빗소리, 국수통,

 넥타이, 가로등, 좁은골목, 타자기, 검은우산......

 

 

숨이 멈춰질것 같은 정적감, 발자국 소리...

그들은 도대체 왜 사랑했을까?

 

 

바람난 유부남,유부녀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격조있는 행동, 옷차림,
말투.....
자신들의 남편, 아내와는 다르다라는 의식에...자신들의 감정을 억제하는.....

아니 억누름을 강요당하는....그들은......

차우는....첸부인은....

 

 

느리면서도 빠른 워킹....
그들은 외롭다. 쓸쓸하다. 왕가위가 언제나 그렇듯이....

그들은 가정이 있어도 고독하다.

매일 저녁 국수통을 들고...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져 저버리지 않으려는 도도한 복장의 그녀는...

어두운....고독의 골목을 걸어간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사랑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사랑해 버리고 만....그는

....끝내....상처를 안고 고백하지만...이미 늦어버린...

그래서 떠날수 밖에 없었던....그는...
공허한 가슴을 이끌고...

2046호에서 아파하고 고뇌하며 글을 쓴다.

 

 

장만옥의 그 애련하고 화려한 의상은....

사랑의 슬픔을 더 깊게 만들어준다.

사랑을 억누르는 몸짓의 아름다움.
어떤 영화보다도 깊은 우수의 미를 보여준 그녀.....

국수통을 들고 골목길을 거닐때의......비오는 처마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마치 누군가 절절히 간절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사람처럼.....
그녀의 뒷모습은 쓸쓸하다.

 


꼬깃꼬깃한 와이셔츠에.....넥타이. 사무적이고 수동적인 양조위.
그가 거머쥔 칸의 트로피는 철저하게 사랑하면서

드러내지 않는 표정과 내면연기의 힘이었으리라.
마음껏 울고싶고 소리치고 싶었지만....그럴수없이 묵묵히 돌아서야만 했던...

사랑한다고 열정적으로 모든걸 고백하고 싶지만.....

그저.... 하염없이 떠나야만 했던...

그 묵인에 대한 경의의 트로피.

 


그의 사랑은 항상 뒤돌아서 있다.
마주서서 보지 못하고 항상 서로를 쫓아가며 잃어버린다.
갖고싶어도...잡고싶어도 잡히지 않는 신기루같은....
언제나 잡으려고 하지만....한발짝 떨어져있는 사랑.

그래서 그의 사랑은 저리다. 아프다. 시리다.

 

 

이별연습.
이별에 연습이 있단 말인가.....어짜피 해야한다며....

첸부인의 눈물.... 억제할수없는....

사랑하기에 떠남이라는 생각만으로 자신을 주체할수없는...
그러면서도 보낼수밖에 없는.....

택시안에서의 미세한 손의 포갬이....

사랑의 절정이라고 믿는다면 우스운 일일까?

 

 

진정 사랑한다면...상대방의 숨결과 손짓, 뒷모습까지 사랑한다면...

제발 떠나지 말아다오. 모든걸 버리고 곁에 남아다오.
사랑하면서 마음이 쓸쓸해지는 일은 더이상 없도록.....
제발.....사랑이 남아있다면....제발.....

 

60년대의 홍콩에서....그들은 그렇게 설레임과 죄책감으로 사랑을 했다.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그들의 사랑은 영원히 남아 있는걸까?

 

 

시간이 흘러
아무것도 더 이상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그는 희미해진 세월을 더듬어
먼지낀 창을 통해 그가 만질수는 없지만 볼 수 있는 과거를 본다.
그리고 그가 본 모든 것은 얼룩저 희미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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