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깨작깨작

영원에 대한 잔상

섭소천 2005. 12. 23. 20:11

 

 

 

 

 

그의 이름은 영원이었습니다.

햇살 가득하던 4월에 그를 처음 만났습니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 지던 사람이었습니다.

함께 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한번 열리기 시작한 마음은

주책없이 자꾸만 커져갔었습니다.

내 안부의 답장 한번 없이 그냥 가끔 들려주는

먼 바다 건너편으로부터 전화가 전부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내겐 최고의 행복이었습니다.

언제부턴가 그 목소리조차 듣기 힘들어졌지만

이미 그는 내 마음속의 연인이었습니다.

내 기다림은 행복했습니다.

 

천일이 지나

우연히 그의 집 앞에서 그를 만났던 날

그의 얼굴을 보게 됐다는 게  너무 기뻐서

처음엔 그의 입에서 나오는 작별인사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저 그를 다시 만났다는 것에 두근거리기만 했습니다.

그 기쁨도 맘껏 느끼지 못했는데

그가 다시 한번 내게 이별을 얘기했습니다.

....

....

....

 

그것은 일방적인 기습통보였습니다.

난 아무 준비도 못했는데...

돌아서 가는 그의 뒷모습이 멀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말 그는 나를 떠나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미 떠나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머무른 적도 없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몹시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눈도 내렸던 거 같습니다.

그곳에서 난 입술을 떨면서 한참동안 그가 돌아간 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오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난 그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서 있다가 날이 어두워짐을 깨달은 난

흔들리는 몸으로 집에 돌아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끝자리에 앉았는데 마침 라디오에서 한참 유행이던 이소라의 '난 행복해'가 나왔습니다.

순간 눈물이 터졌습니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눈물은 마구 쏟아졌습니다.

사람들이 볼까봐 창문쪽으로 얼굴을 돌렸습니다.

집에 도착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혹시 눈에 병이 생긴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모든게 엉망이었습니다.

날씨는 추웠고 눈을 한참동안 맞아 마스카라는 까맣게 번져있었고

외투도 많이 눅눅해져있었고 열도 많이 나는듯 했고 눈물도 멈추지 않았고

그리고 처음으로 실연도 당했습니다.

 

그렇게 한참동안을 정신을 놓아버린채 지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가 돌아왔다는 말만 했습니다.

그 다음은 궂이 말하지 않아도 주위의 사람들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건드리면 부서져버릴까봐 더 이상 묻지도 못했답니다.

 

위태위태하게 부여잡고 있던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그는 그녀와 행복했을 것이고 나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냥 그렇게 끝났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가끔씩 그가 꿈에 나와 행복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하지만

이젠 그가 없다는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어느날

...

우연히 만난 그의 친구에게서 그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교통사고 였답니다.

처음 그를 만났을때가 생각났습니다.

 

'영원히 기억될 너의 이름이야'

'아니 이름이 모냐구여?'

'그러니까 김영원 그게 내 이름이야'

 

그에겐 선견지명이 있었던 걸까요?

그런거라면 없었으면 더 좋았을것을...

 

이젠 세상에 없는 그가 잔인하게도 나를 다시 울렸습니다.

한동안 술에 취해 살았습니다.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는 슬픔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를 아프게 했으면 자기라도 행복할 것이지 왜 그렇게 서둘러야했는지...

헤어졌을때는 그를 원망하는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었는데

그가 없는 하늘아래서 그를 원망했습니다.

원망하고 원망하고 원망하다가 끝내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했던 거보다 더 많이 사랑했었나봅니다.

 

그 후론 그가 죽었다는 그 날엔 그를 생각하며 함께 걸었던 길을 혼자 거닐곤 했습니다.

나름대로 그를 추모한다 생각했지만 어찌보면 난 모질게도 그를 놓지 않은게 분명했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정말 맞는 거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그를 용서할 마음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애써 놓지 못한 그도 놓아주었습니다.

그는 죽어서도 죽기전에도 내 사람은 아니었는데

고집을 부려가며 그의 기억을 붇잡았던건

어찌보면 고인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 하늘을 봅니다.

파아란 하늘이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날때가 있습니다.

그럴땐 어쩌면 그가 그곳에서 가끔은 나를 생각해줘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미소가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영원...부디 그곳에서 행복하기를...

 

그의 이름은 영원이었습니다.

그는 내게 永遠으로 남았습니다.

 

 

 

Forever- R.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