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lms

접속( The Contact, 1997)

섭소천 2006. 5. 13. 05:23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 꼭 만나게 된다고 들었어요.

더 이상 기다리지 말아요.
잊든가.
잊을 수 없다면 가서 당신을 보여줘요.
 


"사랑하면서 친구로 만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죠?"

"바라만 보는 사랑도 있어요."

"왜 그런 사랑을 하죠? 친구 애인이어서 미리 포기하는 건가요?
아니면 거부당할까봐 두려워요?"

"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거지. 사랑 받길 원하는 건 아네요."

"바보 같은 소릴 하는군요. 사랑한다면 사랑 받길 원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요."

 

 

당신은 이곳에서 유일하게 내가 아는 사람이었는데

당신을 본적은 없지만,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다 알 것 같았는데

그걸 느끼지 못하고 가는군요.
이제 나는 다시 혼자가 되겠죠.
당신처럼...
언젠가 그랬죠.

만날 사람은 꼭 만난다는 걸 믿는다고,

이제는 그 말을 믿지 않을래요...
오늘 당신을 만나서 이 음악을 함께 듣고 싶었어요...

 

 

1997년, 처음 이 영화가 나왔을때 거리는 엔딩에 나오는 Sarah Vaughan의  A Lover's Concerto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한국영화에 관심이 없던터라 그다지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지만 수능이 끝나고

마침 할일도 없던터라 노량진의 2류극장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보고난 후에는 아..한국영화도 이렇게 깔끔하게 만들 수 있게 됐구나 싶어 뿌듯했던 기억이...

그때 마침 인터넷이 막 부흥했던때였던터라 영화는 관객몰이에 꽤 큰 성공을 거두었다.

 

유니텔이니 천리안이니 하이텔등 전화접속으로 인터넷에 접속했을때

그 느린 속도를 어떻게 참고 견뎠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그때는 지금보다 유저들의 매너나 수준이 좋았던 거 같다.

 

처음엔 넷상에서 누군가를 만나 대화하는 것이 너무 재밌어서 거짓말안하고 14시간동안

커뮤니티에 접속해서 채팅만 한적도 있었다.

그때는 내가 음악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했었던 때라 음악퀴즈방을 만들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곤 했었다.

(아...정말 오랜만이구나 음퀴 영퀴방...ㅎㅎ)

 

이 영화를 보고나서는 괜히 멜친구를 구해서 멋진 인연을 구해보고 싶다는 절실한 생각에

아무나 마음 가는대로 메일을 보내곤 했었다.

그때 메일을 주고 받던 사람중에 좀 친해졌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나와 영화나 음악 그리고 책까지 아주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

무척 신기하고 즐거웠었다.

 

노는곳도 홍대라 비슷하고 어쩌면 그곳에서 몇번 스쳐지나갈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을 대화하고 수많은 메일이 왔다갔다.

홍대에서 공연이 끝나고 우연히 피씨방에 들어가서 유니텔에 접속을 하니

그사람도 접속해있었다.

잠시 채팅을 하다 둘다 홍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사람이 '만날까요?'라는 말을 건넸을때 어찌나 가슴이 두근거리던지...

막 스무살이 되서 꿈도 많고 아직 세상에 대한 실망이 없었던터라...

왠지 운명같은 사람을 만날것만 같았었다.

 

그렇게 홍대 정문앞에서 약속을 정한 어느 겨울날,

그때 나는 첫사랑'그'가 죽은 후 쭈욱 누구와도 만나고 있지 않았었다.

멋진 사람이길...하고 내심 기대했었다.

정문앞에서 칼날같은 바람을 맞고 있는데 그다지 친하지는 않으나

얼굴은 아는 베이시스트 오빠가 지나간다.

 

"어이~"

"엇,오빠 안녕하세요?"

"추운데 여기서 모하냐?"

"아...친구를 좀 만나기로 해서요."

(괜히 쪽팔려서 채팅한 사람 만난다는 말을 못함)

"어?나도 여기서 친구만나기로 했는데...잘 됐다.서로 올때까지 심심한데 얘기나 하자"

"그러죠"

 

1시간후...

두 사람다 추워서 미치기 직전...

"아...왜케 안오지?"

"글게..."

"............................."

"..............?"

"혹시...니가....XXXX?"

"그럼 오빠가 XXXX?"

"..............."

"핫 ..핫 .. ........."

"참...나....."

"웃긴다...."

"그냥 술이나 마실까요?"

"그래 아침에 해뜨는거 볼때까지 마시자."

"그래요,먹고죽어요.에띠~~내 팔자에 무슨 남자는..ㅡㅡ;;"

"에구...여친한테 거짓말하고 나왔는데...여친부를까?"

"아..그 언니요?불러요,불러."

 

그렇게 내 역사적인 첫 벙개는 어이없이 끝나고 말았었다.

결국 아침에 해뜰때까지 술만 펐다.

그때 나뿐만 아니라 대세가 그런 분위기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 영화의 영향이 컸던 거 같다.

 

그 일이 있은 후엔 영화에 나오는 '부루의 뜨락'도 왔다갔다해보고

동호회 활동도 열씨미 했지만 특별한 누군가를 만나는데는 실패...

하지만 내 젊은 날에 즐거운 기억을 남겨준 이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필모그라피 중 한줄을 차지하고 있다.

혼자 Bar에 가면 내 젊은 날을 기억하며 꼭 듣는 노래

그리고 이 영화 내내 흐르던 노래

Pale blue eyes...

아...술한잔 마시고 싶다.

 

 

 

Velvet underground - Pale blue eyes